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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긱 팜프 ss 츠구미&아카네
    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1. 16. 20:01

    ——루비레의 왕님.
    대체, 누가 처음으로 그렇게 불렀던가.
    ‘별로 상관없지만 말야’
    가진 자——지배자가 아낌없이 내주고, 그 매력으로 속박하고, 붙잡아서 놔주지 않는다. 루비레는 틀림없이 그런 컨셉의 밴드니까, 별명으로서는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어이, 에로 보컬. 듣고 있는 거냐고”
    “……이게 참신하단 말이지”
    “전혀 안 듣고 있잖아!”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반 정도 흘려들으면서 적당히 대답하자, 어느 새 츠구미는 뾰로통해진다.
    ‘에로, 말이지’
    어느 각도로, 뭘 하면 객석에서 비명을 지르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일 하면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다. 적극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몇 번이나 ‘에로’를 붙여 불리는 것은,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이다.

    “너, 왠지 모르겠지만 항상 웃고 있네”
    “누구 탓인데”
    “내 탓이냐고”
    “정답, 천재네”
    “하나하나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고 했잖아. 겨우 세 살 많은 정도로!”
    “헤에. 내 나이, 알고 있구나”
    “………. 투어 팜플렛에 써 있었어”
    “그랬던가”
    “절대로 있었어! 나, 엄청 읽었다고!!”
    “헤에에?”
    “…………. 뭐야 실실거리고”
    “뭐긴. 내 투어 팜플렛을 열렬히 읽어 줬다니 기쁘잖아, 보통”
    “아, 그런가”

    납득한 표정으로 츠구미가 눈을 깜빡인다.
    ‘엄청나게 솔직하네’
    뭐어, 이쪽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설사 팜플렛의 작은 한 글자라도, 루비레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퍼포먼스의 일부를 담고 있으니까. 구석구석까지 읽어 줬다면 기쁜 게 당연하다.
    덧붙이자면, 만약, 전부 읽은 끝에 “맘에 안 들어”라고 말한다면, 입가가 느슨해지는 걸 멈출 수 없다.
    ‘좋아하는 것의 반대는 무관심. 즉, 싫다는 건 좋아의 바로 옆이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 있어요, 라고 큰 소리로 고백하고 있는 것 같은 거다.

    “당신 같은 녀석이라도 역시 기쁘구나”
    “필사를 넘어서 죽을 것처럼 만든 걸 시간을 들여서 음미해 주는 걸, 기뻐하지 않을 녀석 있냐고”
    “뭐어, 그건 그렇지만. 조금 안심했다고 할까”
    “? 어째서”
    “당신이 그런 거,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고”

    츠구미가 가만히 이쪽을 응시한다.
    ‘눈빛이 강하단 말이지. 이녀석’
    입은 빈틈없이 소란스러운 주제에, 시선은 놀랄 정도로 강하고 고요하다.
    자신이 느낀 게 맞는 것인가. 눈앞에 있는 남자는 과연 세간의 평가의 값어치를 하는 것인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용서 없이 확인하려고 한다.

    “나는 뭐어, 오만한 부류의 인간이지만. 남의 호의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오만한 게 아니라 무신경하다고 하는 거야”
    “어려운 말 하는 거 그만둬”
    “네가 팜플렛 구석부터 구석까지 읽어 주는 거, 나는 기쁘고. 이러니저러니해도 루비레의 곡 제대로 들어 주는 것도 기뻐. 고마워”
    “……엣. 뭐야, 갑자기”
    “그런 얘기 하고 있었잖아”
    “그랬던가......?”

    조금 생각에 잠겼다가 “앗!” 하고 츠구미가 소리를 지르고, 갑자기 일어섰다.

    “완전 달라! 진행 순서 어떻게 할까 하고 아까부터 계속 물어 보고 있는데 당신이 제대로 대답 안 해 주니까, 나, 아까부터 계속 화내고 있었잖아!”
    “아? 그런 거 적당히 하면 되잖아”
    “적당히라는 건 뭐냐고!?”
    “뭐어, 대충 좋은 느낌으로 떠들어 둬”
    “무리인 게 당연하잖아!”

    그렇게 말하고, 손에 든 진행 대본 복사본을 퍽퍽 때린다.

    “당신이랑 나랑! 좋은 느낌이라던가! 있을 리가 없잖아!”
    “오히려 지금 그대로의 텐션으로 괜찮은데”
    “그대로라니, 전혀 대화가 아니잖아 이거!”
    “괜찮아괜찮아. 그걸로 시청자가 기뻐하니까”
    “그거 절대로 거짓말이지———!!”
    “그보다, 어째서 그렇게나 긴장하고 있는 거야”
    “긴장하는 게 당연하잖아 TV같은거!! 당신처럼 에로한 얼굴로 서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녀석이랑 같은 취급하지 마!!”
    “비춰지는 거 어차피 몇 초니까, 잘 못하는 폼잡기 같은 거 하지 말고 평소대로 하라니깐”
    “웃지 마!!”

    부들대면서 화낸다. 머리 세팅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필사적이면서, 어색하게 허세를 부린다.
    그런 거, 웃을 수 밖에 없잖아.

    “괜찮으니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얼굴 하고 웃어 두라고”
    “그런 말 해도”
    “흥분으로 떨리는 거 같은 건 라이브 때 만으로 충분하잖아?”

    그렇게 말하자, 츠구미의 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당신도 라이브 할 때는, 그래?”
    “그래. 반대로, 그 기분을 알고 나면 그 외에 떨 이유가 없어”

    빛과 어둠의 대비, 소리의 홍수——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밴드가 만들어내는 경치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멈추고 내장이 떨려온다.
    ‘이렇게 말하면 너도 알 수 있겠지’
    넌지시 그런 의미를 담은 시선을 보내자, 츠구미의 마음은 이미 대기실의 벽도, 천장도, 눈앞의 나도,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가. 그렇지”

    불쑥 중얼거리고 숨을 내쉰다. 이, 분위기가 바뀌는 거.
    ‘질리지 않는단 말이지, 정말’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얇은 앞뒷면을 서로 붙여 놓은 것처럼. 우리들은 닮아 있다.

    왕은 대지를 지배하고, 까마귀는 하늘을 자유로이 내달린다.
    그리고 우리들은 노래에, 음악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다. 그저, 오로지 노래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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