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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긱 팜프 ss 히바리&하이지
    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1. 16. 19:56

    처음 만났던 미팅 날, 헤어질 때의 일을 굉장히 잘 기억하고 있다.

    “히바리군. 같은 드럼끼리, 다시 한 번 잘 부탁합니다!”
    “응,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해. 하이지군”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악수에 응해 주었다. 그, 손을 잡은 순간에 알아 버렸다.
    ‘히바리군, 대단해’
    특히 엄지와 검지 안쪽이 마르고,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다. 시간을 들여서, 계속해서 터무니없는 노력을 해 온 사람의 손이었다.
    시바사키 히바리라는 사람은, 흔히 말하는 ‘드럼 답지 않은’ 드러머다. 깔끔한 얼굴, 하얗고 가는 체구, 품위 있는 태도. 그러면서도 당당한 행동거지는, 도무지 ‘노력’이라는 말이 가진 흙내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 왜 그래?”
    “아……미안”

    황급히 손을 뺐다.
    ‘어떡하지’
    분명 똑같이, 자신에 대해서도 알려졌다.
    ‘이 사람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 질려버리게 하고 싶지 않아’
    RUBIA Leopard에 소속되는 게 결정됐을 때도 완전히 똑같은 걸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때 느꼈던 건 ‘엄청난 일이 돼 버렸다’ ‘쫓겨나고 싶지 않아’ 하는, 좀더 핍박받는 기분이었다.
    방금 전의 기분은, 말은 똑같아도 의미가 전혀 다르다.
    ‘같은 드러머로서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깜짝 놀랐다. 이런 강한 기분이 내 안에 있었다니.

    그래서 오늘, 디그프로에서 우연히 만난 히바리에게 “괜찮으면 우리 집 오지 않을래?” 같은 말을 걸었던 것은, 싸울 상대를 탐색하고 싶다는 호전적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평소에 소극적으로 구는 자신의 행동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미안. 별로 누가 오는 집이 아니니까, 제대로 된 대접은 못 하지만”
    “아니, 괜찮아”

    언제나처럼,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쌀쌀맞다.

    “차 마셔”
    “고마워. ……사무소에서 집이 가깝다고는 들었지만, 진짜 가깝네”
    “최근에 이사했어. 만나서 기뻤으니까 무심코 초대해 버렸는데, 시간 괜찮아?”
    “응, 완전 괜찮아.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선을 그어졌다. 이 이상 들어오지 마, 하고.
    ‘나, 엄청 경계되고 있어’
    그런데도, 히바리의 태도는 무섭지 않고 혐오도 일지 않는다.
    ‘뭘까, 이거, 뭔가랑 닮았어’
    잠깐 생각에 잠겨 있자, 히바리가 입을 열었다.

    “하이지군은, 엄청 붙임성있네”
    “에, 그래?”
    “내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나, 남자들이 안 좋아하니까. 학교에서도 별로 남자 친구 안 생기고”
    “혹시, 나, 거리감 이상해?”
    “아니. 싹싹한 선배라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시치미 뗀 얼굴로 말한다. 그걸 보고, 알아차렸다.
    ‘그래. 이거, 꼭 고양이 같아’
    자존심이 높고 조금도 아양떨지 않는다. 털에서는 윤기가 나고, 분명 혈통서가 붙어 있는.
    ‘꼭 닮았어’
    갑자기, 히바리가 귀여워 보였다.

    “뭐야? 싱글싱글거리고”
    “그, 히바리군이랑 얘기할 수 있는거, 즐거워서”
    “특별한 얘기는 안 했잖아”
    “그래? 일대일로 여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꽤나 특별한 느낌이야”
    “아아……뭐어, 다 같이 있으면 소란스러워서, 그럴 때가 아니고 말이지”
    “그래그래”
    “학교에선 계속 차 마시자는 권유에 도망쳐 다니고 있었는데, 이쪽에서 술판에 어울려야 되게 될 줄은 몰랐어”
    “히바리군, 술 안 좋아해?”
    “술에 안 쎄니까 안 마신다는 걸로 하고 있어. 만에 하나 추태 부리게 되면 안 되잖아. 하이지군은……”

    그렇게 말하고, 히바리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 왜 그래?”
    “……아니. 나, 어째서 너랑 술 얘기 같은 거 하고 있는 걸까”

    거북한 듯한 표정을 해서 “즐거우니까 괜찮지 않아” 하고 웃어 버렸다.

    “나, 술은 좋아해요! 최근 알게 됐는데, 알콜에는 강한 것 같아”
    “헤에, 의외네”
    “맛도 알게 된 것 같고. 술에 맞춰서 안주 만드는 것도 즐거워”
    “요리도 해?”
    “특별히 잘 하는 건 아니지만. 레시피 보면서 만드는 거, 달성감 있어서 좋아. 히바리군은 직접 요리해?”
    “나는 별로…… 청소랑 정리정돈은 좋아하지만”
    “대단해! 간쨩이 손톱 끝이라도 닮아 줬으면 좋겠네”
    “이와하라 매니저?”
    “그래. 그 사람 정말, 가사를 단 하나도 못 해서”

    실없는 얘기가 즐거워서 멈추지 않는다.
    점차 히바리군의 경계심도 풀어진 것 같아서, 쓸데없이 가슴이 뛴다.
    ‘그런가, 친구랑 라이벌은 양립할 수 있구나’
    몰랐다.

    “잔뜩 떠들어서 미안해. 왠지 엄청 즐거워서. 이래봬도 나, 평소에는 낯가림하는 편인데”
    “에, 거짓말이지”
    “진짜야 진짜, 간이 작아서, 생각하는 걸 잘 말 못해”
    “그렇게 안 보여”

    생각하는 걸 전부 정직하게 말하면, 그는 대체, 어떤 표정을 할까?
    ‘화내는 걸까’
    조금 봐 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앞으로, 좀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고’
    지금은 굳이 말하지 않고, 앞으로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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