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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C한정 ss #10 루비레
    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7. 2. 23:16

    2021/7/2

     

     

    “만나는 거, 조금 오랜만이네”

    하이지가 그렇게 말하자, 토키는 “그렇네요” 하고 맞장구치며 살짝 웃었다.

    “그보다, 이런 좋은 가게 데려와 주시고”
    “내가 오자고 한 거니까, 안심해.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아니아니, 그런……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요. 월급날 전이라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응. 그럼, 건배!”
    “건배!”

    일본주로 입안을 축이자, 희미하게 달콤한 향기가 천천히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큰맘 먹고 오자고 하길 잘했다)
    들렀던 악기점에서 오랜만에 딱 마주쳐서, 공연히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일으로 가득찬 일상이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두서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 편한 시간이 느긋하게 알코올에 녹아가는 건 순수하게 즐겁다.

    “하—. 노동 후의 술과 밥, 정말 맛있어……”
    “일하고 돌아가던 길이었어?”
    “네. 새로 알바 시작했는데, 그쪽이 또 꽤나 스파르타라서”
    “엣......괜찮아?”

    틀림없이 인크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조금 여위었다고 생각했는데……알바, 그렇게 힘든거야?”
    “아니, 괜찮아요. 오히려 알바는 감사하다고 할까”

    왠지 부끄러운 듯이 “어쨌든 지금은 건강하니까요!” 하고 말하는 토키의 얼굴이 밝았으니까, 조금 안심했다.

    “죄송합니다, 신경 쓰게 해 버려서”
    “아니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라도 말해 줘”
    “감삼다. 그보다, 그렇게 위태로워 보여요?”
    “ 그…… 혹시, 여러가지로 신경 쓰고 있는 건가 싶어서”
    “아. 그거, 혹시 차트의…… 라고 할까, 하우로 얘기인가요?”
    “응, 뭐어……”

    애매한 대답 째로, 술에 강제로 흘려넣었다.
    (갑자기 너무 센시티브한 얘기 해 버렸던 건가)
    그렇지만, 토키는 의외로 시원스럽게 “어쩔 수 없죠”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하우로의 영향은 지금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쪽은, 첫 주에 그 정도 성적이었으니까 불만 없고”
    “그치만, 사메지마P가 들어오고 인크로 더 재밌어졌고, Updraft 엄청 좋았어. 그런데……”

    어째서 일부러 인크로의 새 앨범이 나오는 시기에?
    게다가, 화제의 드라마 타이업이라니.
    (둘다 우연이고, 너무 생각한 걸지도 모르지만)
    빈정대는 거네, 하던 아카네의 말이 머리 한 구석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상대는, 이쪽의 활동을 일부러 방해해 올 만한 프로덕션이고)
    그렇다고 해서, 모처럼의 술자리에서 싫은 얘기를 하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하이지상이 그렇게 얘기해주는 것 만으로 충분해요. 그것보다…… 그, 이상한 거 물어봐도 돼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상한 표정으로 토키가 살짝 몸을 붙여 왔다.

    “하이지상은, 의식하고 있는 드러머 있어요?”
    “의식?”

    말투로 봐서는, 왕년의 록밴드에 리스펙트가 있는지 아닌지,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으—응…… 그렇네에. 히바리군의 드럼은 부럽지만”
    “부러워요?”
    “응. 히바리군의 드럼은 정교하잖아? 게다가 최근에는, 소리가 훨씬 앞으로 나와 있어서…… 맑고 투명하다고 할까. 엄청 화려해서”

    같은 악기를 쓰고 있을 텐데,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온다.
    그러니까, 안된다고는 알고 있지만, 무심코, 부럽다고 생각해 버리게 되기도 한다.

    “헤에. 그렇게 말해 주면 히바리, 기뻐할것 같은데”
    “그래? 그럼 다음에 말해 볼게. ……토키군은? 쿠로노상의 기타가 부럽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쿠로노상은 뭐랄까, 격이 다르다는 느낌이라. 부럽다면 부럽지만요”

    토키는 고민하는 듯 홀짝홀짝 술을 넘기면서 “분하다던가. 지고 싶지 않아, 같은 건 없었으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런가”
    “죄송해요. 어린애 같은 얘기 해서, 정말. 잊어 주세요…… 하이지상?”


    ——지고 싶지 않다.
    아카네는 자주, 이때다 싶을 때 “이기러 가자” 하고 웃는다.
    그건, 해냈다는 충족감과,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엮여서 나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정한 배틀을 넘어섰다는 의미의 ‘승리’다.
    적어도 나에게는 계속 그랬다.
    (그런가.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기고 싶은 게 아니라. 지고 싶지 않은 거야)
    매상에 순위는 있어도, 음악이나 엔터테인먼트에 이기고 지는 건 없다. 그런 건. 알고 있다. 그치만.
    (HOUND ROAR에 지고 싶지 않아)
    게다가, 음악 이외의 부분에서 무릎을 꿇는 건, 절대로 싫다.

    “지고 싶지 않다는 건 있네”
    “……있는 거에요?”
    “있어”
    “하이지상도 그런 게 있구나”
    “응, 있어”

    소리내서 말하자, 확실히 조금 어린애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치만, 그래도 괜찮지. 무리해서 어른인 척 하지 않아도)
    기세로, 들고 있던 글라스를 전부 비웠다.

    “좋아! 토키군. 오늘은 잔뜩 마시자”
    “넵”
    “다음 술, 내가 골라도 돼?”
    “넵, 감삼다!”

    조금 고민하고, 씁쓸한 맛의 일본주를 주문했다.
    이기고 싶을 때의 가슴에 싹트는 열과는 조금 다른, 까칠까칠한 감촉의 “지고 싶지 않다” 에 마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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