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그니티 프로덕션/ss
-
FC한정 ss #07 루비레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4. 4. 23:45
2021/4/1 히구라시 그룹 CEO 히구라시 미카도의 아침은 이르다. 기상은 항상 정확히 5시. 장소는 뉴욕. 가볍게 몸가짐을 정돈하고, 준비해 둔 스포츠 웨어로 갈아입고 나간다. 아파트 거주자 용 수영장도 가끔 이용하지만, 요즘 좋아하는 것은 센트럴파크에서의 런닝이다. 시기에 따라서는 아직 어슴푸레한 시간, 조용하고 쌀쌀한 공기 속을 느긋하게 달린다. 조금 지나자 막 일어나기 시작한 신체가 열을 띠고 땀이 서서히 배어나오는, 이 감촉이 기분 좋다. 런닝 전용 골전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록밴드 RUBIA Leopard가 연주하는 생기 넘치는 록이다. 그렇게 아침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자, 노래를 밀어내면서 전화가 걸려온다. “좋은 아침, 카에데” “미카도. ..
-
FC한정 ss #06 인크로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3. 12. 20:14
2021/3/7 “우왓” 정면에서 돌풍이 불어와서, 츠구미가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봄의 시작은 변덕스럽다. 낮이 길어지고, 꽃봉오리는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고, 겨울의 기색은 확실하게 멀어져가고 있는데, 갑자기 추워지거나, 추워졌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따뜻해지거나 한다. 게다가 이 바람. “아—! 정말— 머리 망가졌잖아” 멈춰서 있을 시간은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 알바에 지각해 버린다. 필사적으로 달려가면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하늘, 비쳐드는 햇빛, 등을 찌르는 바람, 빛, 바람, 빛, 바람—— (오늘 날씨 인크로같네)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귀 안쪽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베이스의 썸, 풀, 얕고 날카롭게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어택에 스네어, 심벌) (그리고, 얽혀있던 기..
-
FC한정 ss #06 루비레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3. 12. 20:11
2021/3/7 캘린더를 보고 마시로는 무심코 깜짝 놀랐다. 벌써 2월도 끝나고, 앞으로 며칠이면 3월. (뭐어, 2월은 짧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새해가 밝고 벌써 2개월이나 지나가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렇지만, 손 안의 캘린더를 보면 살아온 흔적이 제대로 남아 있어서, 게다가, 전부 예정에 확실하게 짚이는 데가 있다. “우—와……” 스틸 촬영, 인터뷰, 이벤트, 티비 출연—— 최근의 오프를 찾으려다가, 도중에 더듬어 보는 게 귀찮아졌다. (뭐어, 최근 몇 년 간은 한가함을 주체 못 한 기억은 없지만) 데뷔 이전에는 한가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알바를 얼마나 우겨넣어도, 바보짓을 하면서 놀고 있는 시간조차. 베이스에 닿고 있는 순간만이 특별했다. 해야 할 일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이, 시간을..
-
2/22 쿠로노 생일 ss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3. 3. 00:10
“아카네상. 잠깐 괜찮으실까요?” 이동중인 차 안. 쿠로노가 말을 걸자, 조수석의 아카네는 들고 있던 태블릿에서 눈을 떼고, 다음 말을 재촉하듯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22일 말인데요” “오. 드디어 정한 건가” 고개를 끄덕이고, 아카네가 입꼬리를 올린다. 2월 22일은 쿠로노의 생일이다. 그 날은 잡지의 취재 예정이 있지만, 조금 길어지더라도 아마 해가 지기 전에는 끝날 것이다. ——뭐 하고 싶은지 생각해 둬, 생일 쿠로노가 그 말을 들은 것은, 저번주의 일이다. “여러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만, 오랜만에 집에서 요리가 하고 싶어요” “……하?” “최근, 여유롭게 보낼 시간이 없었어서. 스케쥴에 변경이 없다면, 집에 돌아가는 중에 대형마켓에도 들를 수 있고” “아—. 잠깐잠깐” 그 외에 다른 건 없는 ..
-
FC한정 ss #05 루비레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3. 2. 23:06
2021/02/02 눈이 떠지고, 이와하라는 한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밝아) 방에는 한가득 햇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밝아……!?) 기세 좋게 벌떡 일어난다. 바로 베드사이드의 충전기를 본다. 그런데, 중요한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며칠이고, 대체 몇시야?) 어제, 날짜가 바뀌고 나서 심야에 돌아온 건 기억하고 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냉장고 문을 열고—— 그런데, 그 뒤의 기억이 전혀 없다. “아, 간쨩. 좋은 아침이에요” 거실로 뛰어들어가자, 하이지가 태평한 말을 하면서 뒤돌아봤다. “하이지, 지금 몇 시야” “12시를 조금 지난 참인데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자, 하이지는 바로 “간쨩, 잠꼬대하고 있지요” 하고 놀리듯이 웃었다. “오늘은 일, 쉬는 날이에요” “쉬는 날?” ..
-
FC한정 ss #05 인크로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3. 2. 23:03
2021/02/02 올해 연말연시에는 본가에 돌아가지 않았다. 해가 넘어가는 날과 설날에는 히바리네 집에서 빈둥빈둥, 2일에는 갑자기 히구라시・토키토 집에 불려가고, 3일에는 루비레가 나오는 특집 방송을 아파트의 조그만 tv로 봤다. 그러던 중에 학교가 시작해서, 시험과 과제의 밀려오는 공격에 마주쳐서, 정월 기분 같은 건 바로 날아가 버렸다. “토키—! 얼른얼른—!”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수면 부족인 몸을 이끌고 비탈길을 오르고, 히이히이 하면서 긴 계단을 힘껏 디딘다. 아아, 실패했다. 아무리 오늘이 올해 겨울 제일 추운 날이라고 해도, 패딩 안에 두꺼운 니트 같은 거 입고 오는 게 아니었다……. “츠구쨩 정말 기운차네” “히바리” “응? 왜 그래?” “너, 왠지 낯빛 좋네” “..
-
FC한정 ss #04 루비레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3. 1. 16:56
2020/12/31 “아니, 이런 데 까지 따라오지 않으셔도” “집에 있어도 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한 휴일이라구요” “너도 멍하니 안 있잖아” “그건…..뭐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쿠로노는 차를 주차장에 멈췄다. 조수석을 슬쩍 보자, 만족스러운 듯이 웃는 아카네와 눈이 마주친다. “……알겠어요. 제가 졌어요” “너도 할 수 없는 걸 잔소리하지 말라고. 오니쨩”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그만둬 주세요” “어째서” “항복했잖아요. 저를 곤란하게 하면서 노는 건 그만둬 주세요” 솔직하게 “알겠어” 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오늘은 꽤나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막 나무란 참인데도, 무심코, 입가가 느슨해져 버린다. *** 올해는 새해맞이..
-
FC한정 ss #04 인크로디그니티 프로덕션/ss 2021. 3. 1. 16:55
2020/12/31 “오늘 쓰레기 정리하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토키!” “그보다, 감사는 됐으니까 음쓰는 알아서 버리라고 진심” “나 요리도 안 하는데, 어째서 냉장고에 있었던 걸까. 저, 말라비틀어져서 반으로 줄어든 송이버섯”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것보다, 카레로 추정되는 뭔가가 들어있는 저 용기. 저거 최고로 위험하니까 잊어버리지 말고 버려라” “알겠다니깐!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쓰레기 내놓는 거 어제 끝나버렸으니까” 매년 항례인, 츠구미의 방 대청소가 끝난 연말 저녁. 웃으면서 먼저 가는 츠구미를, 반 걸음 뒤처져서 한숨과 발소리를 울리면서 따라간다. 변하지 않는 광경이다. 고향을 떠나와서, 나란히 걸어가는 길은 변했지만. “말해두겠는데 너 그거 작년에도 말했다고” “엣또……뭐어, 나니까..